어린이날 생각해보는 교육문제

오늘은 5월 5일 어린이날.
아마도 많은 부모님들께서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공원도 가고, 소풍도 가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장난감이며, 게임기 같은 선물을 해주신 분들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은 어린이날이니까요.
하지만, 오늘같은 날 어른들이 생각할 일이 소풍이나 특별한 선물 만은 아닐 것입니다.
어린이날이야말로 '아이들의 행복한 삶', '행복한 삶을 위한 준비'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볼 몇 안되는 기회이니까요.
바로 아이들의 교육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그럼, 우리사회의 교육 현실을 돌아볼까요?
우리의 고등학교 아이들은 대학 진학을 위한 무한 경쟁의 한복판에 내던저져서 밤 12시가 되어도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12시가 넘도록 학원에서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재정적 지원을 해줄 수 있는 부모님이 계신 것을 행운으로 알아야 하는 형편입니다. 주말도, 방학도 없는 3년간의 전쟁입니다.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라고 다르지는 않습니다.
명문대 입학의 코스라고 할 수 있는 특목고에 진학하려면 내신성적 관리는 물론이고, 일찌감치 고등학교 교육과정 수준의 공부를 마스터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학원공부와 과외는 필수입니다.
천만다행으로 재정적 형편이 좋아서, 자녀들의 과외나 학원교육을 보조 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는 사람 이라면 이들은 '가시덤불을 헤쳐 나갈 최소한의 수단'은 갖춘 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분들이라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빨리 체념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데 더 열을 올리는 것이 낳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많은 분들은 '경쟁'이 교육의 본질이라는 주장에 쉽게 수긍을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누구나 좋은 학교에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니, 당연히 더 뛰어난 사람이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지식수준의 차이에 따른 차별은 이유있는 차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현실에서 그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과외교육을 받은 사람과, 그런 기회를 갖지 못한 사람이 동일한 수준의 지식을 갖을 수 는 없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전제에 차별이 있다면, 그것을 근거로한 차별은 정당화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일 이것이 정당화 된다면, 사교육의 기회의 차이를 결정하는 '돈의 문제'가 사실상 상급교육의 자격 여부를 결정짓는 결정적인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어떤 학생은 학교에 다니는것 조차 벅찹니다.
어떤 학생은 학교에는 잘 다니지만, 그 외에는 아무런 과외교육을 받을 수 없습니다.
어떤 학생은 학원에는 다니지만, 개별적인 과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학생은 학원도 다니고 과외도 받지만, 집이 부자인 친구들에 비해 많은 돈을 지불 할 수 없기 때문에 비교적 '낮은 수준'이라고 평가 받는 교사에 의해 가르쳐집니다.
그리고 어떤 학생은 최고의 교사에 의해 개별적인 과외교육을 받고, 최고의 학원에서 공부합니다.
위의 차이를 지배하는 것은 오로지 '돈'입니다.
그리고, 그 차이가 '지식의 수준'을 다르게 하고, '지식의 차이'가 '재주와 능력, 인격과 개성의 차이'(즉, 인간의 가치의 차이)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식의 차이가 인간의 가치의 차이를 가져온다고 해서, 모든것이 정당화 될 수 있을까요?
교육은 '지식을 배우는 과정'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가치를 형성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사회와 우주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고 학습하며, 고민하는 교육의 과정에서 그 인격과 가치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은 단순히 '지식을 배울 기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가치를 형성할 기회', '가치를 실현할 기회'의 문제인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단순히 '돈의 차이'가 '상급교육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의 차이'가 되는 현상은 기필코 막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용인된다는 것은 바로 "돈이 없는 사람의 가치의 형성이나 실현의 기회가 근본적으로 차단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회에서 "노력하면 못 이룰 것이 없다."거나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은 헛된 망상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삼불제가 유지되어야 합니다.
삼불제는 '좋은 교육'이나 '이상적 교육'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최악의 교육을 막기위한 제한선'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과거 삼불제가 공고하던 시절에도 사교육은 맹위를 떨쳤고, 사교육의 차이가 상급교육의 기회의 차이로 나타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삼불제가 뭐냐구요?
-. 고교등급제 금지
-. 기여입학제 금지
-. 대학별 본고사 금지
그러나, 이명박 정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우리나라의 대학들이 모여 만든 단체) 같은 유력한 교육단체에서 삼불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공공연하게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상 고교평준화를 깨트리고 서열화를 조장하는 정책이 거침없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대학별 본고사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나마 기여입학제 금지 부분은 워낙 많은 국민들이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은 유지되고 있지만, 그것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습니다.
만약에, 고교평준화가 무너지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것은 '특목고'를 보면 단박에 알 수 있습니다. (지난 학생 모집에서 고려대가 특목고 출신 학생에게 더 유리한 평가기준을 적용해서 일반고 학생이 사실상 불이익을 당했다는 이야기는 많이들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지금도, 특목고에 가고싶은 학생들은 일반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정도의, 별도의 특별한 준비를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고교평준화가 무너지게 되면, 모든 중학생들이 지금의 특목고와 같은 좋은 학교에 가기위해 입시전쟁을 치뤄야 하고, 그 입시전쟁에서 '학원수업과 개인과외'는 결정적인 작용을 하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이치입니다.
아이들이 입시지옥에서 고통받는 것은 어찌보면 둘째문제 입니다. 첫째 문제는 '돈'인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과연 중학교의 평준화는 언제까지 유지 될 수 있을까요?
혹시 특목고와 같은 좋은 고등학교에 학생을 많이 보내는 순으로, 중학교가 서열화 되지는 않을까요?
그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아마 중학교 앞에는 이런 현수막이 붙을 것입니다.
"본교 졸업생 국내 최고 ○○○고교 ○명 입학"
이런 교육 환경에서 우리의 아이들이 과연 바르고 올곧게 자랄 수 있을까요?
초등학교 때부터 이미, 과외교육에, 학원교육으로 찌들어 살고 있는 지금의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고교평준화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지금도 이런데, 고교 서열화, 중학교 서열화가 이루어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것은, 사교육 자체를 반대한다는 주장과는 거리가 있는 것입니다. 사교육을 반대하는 것과 공교육이 사교육 의존적, 사교육 조장적으로 되면 안된다는 말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교육은 단순히 지식을 배우는 과정이 아니라 '가치를 형성하는 과정'입니다.
아이들이 이 과정을 통해서 인격을 형성하고 인생의 지표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하급교육의 경우 가급적이면 비경쟁적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경쟁이라는 과정이 교육의 본질적 목적을 침해하는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오늘같은 날에도, 점심을 못먹은 아이, 부모로부터 돌봄을 받지 못하는 아이가 있습니다.
이런 아이들에게도 우리사회는 열려있어야 합니다.
어린이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들입니다.
========================================
ps.
이 글을 올린지 채 하루도 되지 않아서,
기여입학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교려대 총장의 망언이 나왔네요.
기가 찰 노릇입니다.
관련기사 : 고대총장 "기여입학제 도입 필요"
오늘은 5월 5일 어린이날.
아마도 많은 부모님들께서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공원도 가고, 소풍도 가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장난감이며, 게임기 같은 선물을 해주신 분들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은 어린이날이니까요.
하지만, 오늘같은 날 어른들이 생각할 일이 소풍이나 특별한 선물 만은 아닐 것입니다.
어린이날이야말로 '아이들의 행복한 삶', '행복한 삶을 위한 준비'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볼 몇 안되는 기회이니까요.
바로 아이들의 교육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그럼, 우리사회의 교육 현실을 돌아볼까요?
우리의 고등학교 아이들은 대학 진학을 위한 무한 경쟁의 한복판에 내던저져서 밤 12시가 되어도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12시가 넘도록 학원에서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재정적 지원을 해줄 수 있는 부모님이 계신 것을 행운으로 알아야 하는 형편입니다. 주말도, 방학도 없는 3년간의 전쟁입니다.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라고 다르지는 않습니다.
명문대 입학의 코스라고 할 수 있는 특목고에 진학하려면 내신성적 관리는 물론이고, 일찌감치 고등학교 교육과정 수준의 공부를 마스터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학원공부와 과외는 필수입니다.
천만다행으로 재정적 형편이 좋아서, 자녀들의 과외나 학원교육을 보조 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는 사람 이라면 이들은 '가시덤불을 헤쳐 나갈 최소한의 수단'은 갖춘 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분들이라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빨리 체념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데 더 열을 올리는 것이 낳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많은 분들은 '경쟁'이 교육의 본질이라는 주장에 쉽게 수긍을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누구나 좋은 학교에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니, 당연히 더 뛰어난 사람이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지식수준의 차이에 따른 차별은 이유있는 차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현실에서 그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과외교육을 받은 사람과, 그런 기회를 갖지 못한 사람이 동일한 수준의 지식을 갖을 수 는 없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전제에 차별이 있다면, 그것을 근거로한 차별은 정당화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일 이것이 정당화 된다면, 사교육의 기회의 차이를 결정하는 '돈의 문제'가 사실상 상급교육의 자격 여부를 결정짓는 결정적인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어떤 학생은 학교에 다니는것 조차 벅찹니다.
어떤 학생은 학교에는 잘 다니지만, 그 외에는 아무런 과외교육을 받을 수 없습니다.
어떤 학생은 학원에는 다니지만, 개별적인 과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학생은 학원도 다니고 과외도 받지만, 집이 부자인 친구들에 비해 많은 돈을 지불 할 수 없기 때문에 비교적 '낮은 수준'이라고 평가 받는 교사에 의해 가르쳐집니다.
그리고 어떤 학생은 최고의 교사에 의해 개별적인 과외교육을 받고, 최고의 학원에서 공부합니다.
위의 차이를 지배하는 것은 오로지 '돈'입니다.
그리고, 그 차이가 '지식의 수준'을 다르게 하고, '지식의 차이'가 '재주와 능력, 인격과 개성의 차이'(즉, 인간의 가치의 차이)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식의 차이가 인간의 가치의 차이를 가져온다고 해서, 모든것이 정당화 될 수 있을까요?
교육은 '지식을 배우는 과정'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가치를 형성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사회와 우주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고 학습하며, 고민하는 교육의 과정에서 그 인격과 가치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은 단순히 '지식을 배울 기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가치를 형성할 기회', '가치를 실현할 기회'의 문제인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단순히 '돈의 차이'가 '상급교육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의 차이'가 되는 현상은 기필코 막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용인된다는 것은 바로 "돈이 없는 사람의 가치의 형성이나 실현의 기회가 근본적으로 차단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회에서 "노력하면 못 이룰 것이 없다."거나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은 헛된 망상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삼불제가 유지되어야 합니다.
삼불제는 '좋은 교육'이나 '이상적 교육'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최악의 교육을 막기위한 제한선'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과거 삼불제가 공고하던 시절에도 사교육은 맹위를 떨쳤고, 사교육의 차이가 상급교육의 기회의 차이로 나타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삼불제가 뭐냐구요?
-. 고교등급제 금지
-. 기여입학제 금지
-. 대학별 본고사 금지
그러나, 이명박 정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우리나라의 대학들이 모여 만든 단체) 같은 유력한 교육단체에서 삼불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공공연하게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상 고교평준화를 깨트리고 서열화를 조장하는 정책이 거침없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대학별 본고사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나마 기여입학제 금지 부분은 워낙 많은 국민들이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은 유지되고 있지만, 그것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습니다.
만약에, 고교평준화가 무너지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것은 '특목고'를 보면 단박에 알 수 있습니다. (지난 학생 모집에서 고려대가 특목고 출신 학생에게 더 유리한 평가기준을 적용해서 일반고 학생이 사실상 불이익을 당했다는 이야기는 많이들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지금도, 특목고에 가고싶은 학생들은 일반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정도의, 별도의 특별한 준비를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고교평준화가 무너지게 되면, 모든 중학생들이 지금의 특목고와 같은 좋은 학교에 가기위해 입시전쟁을 치뤄야 하고, 그 입시전쟁에서 '학원수업과 개인과외'는 결정적인 작용을 하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이치입니다.
아이들이 입시지옥에서 고통받는 것은 어찌보면 둘째문제 입니다. 첫째 문제는 '돈'인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과연 중학교의 평준화는 언제까지 유지 될 수 있을까요?
혹시 특목고와 같은 좋은 고등학교에 학생을 많이 보내는 순으로, 중학교가 서열화 되지는 않을까요?
그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아마 중학교 앞에는 이런 현수막이 붙을 것입니다.
"본교 졸업생 국내 최고 ○○○고교 ○명 입학"
이런 교육 환경에서 우리의 아이들이 과연 바르고 올곧게 자랄 수 있을까요?
초등학교 때부터 이미, 과외교육에, 학원교육으로 찌들어 살고 있는 지금의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고교평준화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지금도 이런데, 고교 서열화, 중학교 서열화가 이루어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것은, 사교육 자체를 반대한다는 주장과는 거리가 있는 것입니다. 사교육을 반대하는 것과 공교육이 사교육 의존적, 사교육 조장적으로 되면 안된다는 말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교육은 단순히 지식을 배우는 과정이 아니라 '가치를 형성하는 과정'입니다.
아이들이 이 과정을 통해서 인격을 형성하고 인생의 지표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하급교육의 경우 가급적이면 비경쟁적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경쟁이라는 과정이 교육의 본질적 목적을 침해하는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오늘같은 날에도, 점심을 못먹은 아이, 부모로부터 돌봄을 받지 못하는 아이가 있습니다.
이런 아이들에게도 우리사회는 열려있어야 합니다.
어린이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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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이 글을 올린지 채 하루도 되지 않아서,
기여입학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교려대 총장의 망언이 나왔네요.
기가 찰 노릇입니다.
관련기사 : 고대총장 "기여입학제 도입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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