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경향신문에 칼럼을 게재하는 이대근기자의 두개의 칼럼이 있다.
하나는 노무현 대통령께서 서거하신 후인 5울 27일자 칼럼이고, 다른 하나는 지난달 4월 15일 칼럼이다.
두개의 칼럼을 읽고 있노라면, 할 말을 잊게 된다.
그는 마치 현실에 뿌리가 없는 꿈나라에 사는 노무현을 바라는 것 같다.
진흑탕 속에서 수많은 부조리와 홀로 싸우다 간 노무현은 보이지 않고,
흙뭍은 그의 옷소매만 타박하는 그는 대체 어느나라 사람인지 뭍고 싶다.
구경꾼,
방관자,
비평가,
이대근 기자는 그저 그런 사람일 뿐이다.
그는 정의를 위해 진흙탕을 뒹굴며 싸울 일이 없는 그런 사람이다.
그리고, 그런 방관자 뿐인 우리나라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더이상 살 수 없었던 것이다.
[참조]
제가 가끔 들르는 마케터님께서도 경향신문 이대근 기자에 대한 포스팅을 해놓으셔서 링크합니다.
경향신문 편집 부국장이라는 사람의 생각
-----------------------------------------------------------
[이대근칼럼]덕수궁 돌담길의 초혼(招魂) - 5월 27일 경향신문
<이대근|정치·국제에디터>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줄지어선 사람들의 행렬이 꽤 길다. 땅거미가 깔리기 시작해도 그들은 떠나려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어둠은 촛불을 밝혀야 할 때임을 알리는 신호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슬픔과 원망, 안타까움과 간절함, 그리고 누군가를 향한 노여움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 그들을 사로잡고 있지 않다면, 그렇게 오랜 시간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오직 꽃 한 송이를 바치기 위해 돌담길에서 자기의 소중한 시간을 아낌없이 소비하는 그들의 정서는 단순한 의례 행위를 넘는다. 무엇이 시민들을 거리로 불러냈을까. 말을 쉽게 하는 이들은 노무현 5년의 치적을 칭송한다. 그러나 그런 장의용 언어는 일주일치도 유효하지 않은 너무 허허로운 것이어서 그의 영혼을 위로해 줄 수 없다. 사실 그의 5년 집권에 대한 평가는 냉정했다. 그에 대한 기대만큼 그를 평가하는 기준이 높았던 결과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조차 마지막 글에서 자신이 정치적 상징이나 구심이 되는 걸 감당할 수 없다며 세평을 수긍했다. 자기 부정이었다. 대의에 자기 존재 전체를 던져왔던 그에게 자기 부정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였다. 결국, 그는 ‘나를 버려 달라’고 호소했다. 벼랑 끝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기보다 잡은 손을 놓는 쪽을 택했다. 그리고는 감히 그걸 운명이라고 했다. 여백 없는 종말, 찬란한 소멸이었다.
죽음으로써 살아난 ‘서민의 벗’
그는 유년의 추억이 서린 바위에 올라 다시 한번 자기를 던짐으로써 자신을 옥죄던 통치자로서의 딱딱한 껍데기를 깨버리고 그 안에 갇혀 있던 맨몸의 인간 노무현을 드러냈다. 그 드러냄을 통해 비로소 그는 자신을 해방했다. 집권 5년이 노무현의 중요한 일부인 것은 분명하지만, 평생 실패의 짐을 져야 할 5년이 전부는 아니었다. 5년보다 더 소중한 추억을 그는 간직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기득권의 일부였을 때가 아니라, 기득권에 도전했을 때, 권력에 안주했을 때가 아니라 세상의 부름을 받고 어두운 곳에 있는 이들,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떨쳐 일어섰을 때, 자본가의 친구였을 때가 아니라 가난하고 불쌍한 자의 이웃이었을 때, 이제 말할 자격을 잃어버렸다고 자책했던 민주주의·진보·정의라는 가치를 온 몸으로 껴안았을 때의 바로 그 아름다운 시절들이다. 그러나 시민들은 추억들이 과거에 묻히기보다 재현되기를 원했다. 그것이 진정 그의 운명이었다. 그러기 위해 그는 죽음으로써 살아나야 했다.
대한문 앞에 이런 글귀가 있었다. ‘가난한 자들의 친구, 서민의 수호자.’ 그의 성공과 실패의 본질을 말해준다. 가식적인 찬사는 그를 거짓되게 할 뿐이다. 그의 실패에 깊이 절망해 본 자들이야말로 진정으로 그의 고뇌, 그의 슬픔에 닿을 수 있다. 그를 정당하게 비판했던 자만이 그의 죽음의 의미를 읽어낼 수 있다. 그를 올바로 미워한 자만이 그를 사랑할 수 있다. 그의 돈 많은 친구나 한 자리씩 차지했던 고위관료, 그의 은혜를 입은 지인들이 진정 노무현의 가치를 사랑했을 것 같은가. 그들이 이 거리에 감도는 특별한 기운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은가. ‘빽’ 없고 돈 없고 힘 없는 이들이야말로 진실로 노무현을 사랑한 이들이었지만, 그들은 정작 그가 죽어서야 그를 되찾을 수 있었다.
대한문 한 모퉁이에서 나지막하고 느린 단조의 읊조림이 들려왔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샛 바람에 떨지 마라/ 창살아래 네가 묶인 곳/ 살아서 만나리라.” 몇몇은 수건을 꺼내 눈가를 닦았다. 그렇지 않은 이들은 속으로 울었다. 연대와 공감, 연민과 건강한 분노의 이름으로 그가 살아 돌아왔다. 그의 심장은 지금 이 거리에서 고동치고 있다. 다시는 우리의 벗을 그들에게 빼앗기지 않겠다는 결의에 찬 시민들이 잃어버린 꿈을 찾으러 거리로, 거리로 나오고 있다.
수백만의 노무현으로 부활하자
그래, 다시 시작하자.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우리가 이 길로 들어섰던 것일까. 이 ‘살인(殺人)의 권력’ 앞에 이렇게 초라하고 무기력해진 것은 무슨 까닭일까. 오직 순수와 정의의 뜨거움으로 달리던 그 많던 노무현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시대의 요청에 기꺼이 응답하던 열정들은 어디로 갔나. 국가는 다시 압제의 도구로 변했고, 정치는 작동하지 않고 시민사회는 죽어가고 있다. 하나의 노무현이 죽어 수만, 아니 수백만의 노무현으로 부활하는 대반전을 맞이하자. 그래서 피 끓는 청춘의 시대로 돌아가자. 오, 정녕 꿈인가?
[이대근칼럼]굿바이 노무현 - 4월 15일 경향신문
<이대근 정치·국제에디터>
“내가 잘못한 게 뭐가 있습니까. 한 번 꼽아 보세요.” 그가 이렇게 말했을 때 어떤 잘못을 상기시키면 그가 승복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그만두었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는 비정규직·양극화 문제, 북핵문제 외에는 잘못한게 하나도 없다고 했다. 그는 퇴임 1년4개월을 남겨 놓은 시점에 이미 자기평가를 다 끝내고, 그걸 몇몇 언론인을 초청한 자리에서 막 선언하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머릿속이 하얗게 지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다행히 그는 자신이 얼마나 부당한 평가를 받고 있는지 설명하는 데 열중하느라 자기가 질문을 던졌다는 사실을 잊은 듯했다. 그는 점차 진지해졌고 얼굴은 붉어져갔다. 담배를 꺼내 물었다. 어느새 목소리가 높아지고 빨라졌다. 의자를 옆으로 비스듬히 돌렸다. 손 움직임이 커졌고, 말은 더 거칠어졌다.
“김영삼은 자기도 모른 상태에서 벼랑으로 떨어졌고, 김대중은 임동원 해임건의 문제로 레임덕에 빠지고 게이트에 휘말렸습니다. 나는 더이상 떨어질 곳이 없어요. 난 소통령도 없고, 게이트도 없습니다.” 그러나 노무현이 그 말을 할 때는 그의 형이 박연차와 함께 농협을 먹잇감 삼아 돈을 챙긴 지 1년 지난 뒤였다. 그리고 그 말을 한 지 10개월 뒤 박연차는 대통령 지시를 받고 100만달러가 든 가방을 대통령 관저에 가져다 주었다고 한다. 또 그 말을 한 지 1년4개월 뒤에는 노무현의 아들과 조카가 500만달러를 요구하자 박연차는 대통령의 부탁이기에 그냥 주었다고 한다.
돈받은 본질은 달라지지 않아
누가 돈 달라 했고, 누가 돈을 썼는지 지금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지시하고 전달하고 받은 이들은 모두 노무현의 가족이라는 점이다. 남편·부인·형·아들·조카. 그리고 그들을 돕는 가족과 다름없는 사람들, 그들이 한 일이다. 노무현 패밀리가 한 일이다.
그런데 노무현은 범죄와 도덕적 결함의 차이, 남편과 아내의 차이, 알았다와 몰랐다의 차이를 구별하는 데 필사적이다. 그러나 그런다고달라지지 않는다. 참여정부의 실정으로 서민들이 가난해지는 동안 노무현 패밀리는 부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재벌 개혁을 다짐하고는 삼성에 국정을 의탁하고, 특권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하고는 스스로 특권층이 되고, 시장 개혁 대신 시장 만능의 우상을 퍼뜨림으로써 노무현을 통해 세상의 낡은 질서를 바꾸려 했던 그 열정을 싸늘한 냉소로 바꾸어 놓고, 절망 속에 빠진 서민을 버려두고 자기들은 옥상으로 피신해 헬기 타고 안전지대로 탈출하려 했다는 사실은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대통령 패밀리끼리는 건드리지 않기로 하자”고 했다던가. 그들에게는 정권교체가 패밀리 교체, 아니 이권 교체로 보였던 모양이다. 그랬기에 수많은 절박한 이들의 구원의 손길을 뿌리치고 그 마지막 헬기를 향해 손 내민 한 사람만 더 태우고 떠나려 했을 것이다. “우리 쪽 패밀리에는 박연차도 포함시켜 달라.” 우리는 이제 민주화 세력이 아닌, 의리·이권·혈연으로 뭉친 이 패밀리가 진정한 집권세력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몰랐다’는 점을 노무현이 더 설득력 있게 해명한다 해도, 자기 정권의 존재 이유였던 개혁을 포기하면서도 그토록 지키려 했던 패밀리의 안전과 그들이 축적한 부를 지키기는 어려워 보인다. 물론 그는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5년간 되풀이 했던 그 신물 나는 <노무현의 투쟁> 속편을 끝까지 보여주고야 말 것이다.
자신이 뿌린 씨앗 거두고 가길
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집권한 그는 민주화 운동의 인적·정신적 자원을 다 소진했다. 민주화 운동의 원로부터 386까지 모조리 발언권을 잃었다. 그를 위해 일한 지식인들은 신뢰와 평판을 잃었다. 민주주의든 진보든 개혁이든 노무현이 함부로 쓰다 버리는 바람에 그런 것들은 이제 흘러간 유행가처럼 되었다. 낡고 따분하고 믿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그 이름으로는 다시 시민들의 열정을 불러 모을 수가 없게 되었다. 노무현이 다 태워버린 재 속에는 불씨조차 남은 게 없다. 노무현 정권의 재앙은 5년의 실패를 넘는다. 다음 5년은 물론, 또 다음 5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렇다면, 노무현 당선은 재앙의 시작이었다고 해야 옳다. 이제 그가 역사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란 자신이 뿌린 환멸의 씨앗을 모두 거두어 장엄한 낙조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언론과 민주주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노무현 대통령 관련 보도, 무엇이 문제인가? (0) | 2009/06/10 |
|---|---|
| 노무현을 죽이더니, 이제 나라를 전쟁으로 몰고가는 언론 (0) | 2009/06/03 |
| 경향신문 이대근 기자가 말하는 노무현 (0) | 2009/05/28 |
| 기자들이 말하는 팩트(fact, 사실)보도 (1) | 2009/05/25 |
| '추측 일보'와 '주장 신문' (8) | 2009/04/15 |
| [한겨레와 경향신문을 생각하며] 연대의 문제 (0) | 2009/04/1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