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지론은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sophists)나 회의론자로 거슬러 올라가서 그 기원을 찾을 수도 있으나, 신의 본체는 알 수 없다는 중세의 신학사상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인간은 일종의 지적(知的) 직관(直觀)인 그노시스(gnosis)에 의하여 신의 본체를 직접 알 수 있다는 그노시스파(派)나 본체론자의 주장에 대하여 그노시스를 부정하는 것이 불가지론이다. 로마 가톨릭은 신의 존재는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이성(理性)에 갖추게 되는 ‘자연의 빛’에 의하여 알게 되지만, 신의 본체 자체는 알 수 없다고 하여 그노시스를 부정하였다. 신은 현세(現世)에 사는 사람에게는 거울에 비치는 모습처럼 뚜렷하지 않으며, 신과 직접 마주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세상에서 가능하다.
인도에서는 육사외도(六師外道)의 한 사람인 산자야가 주장하였다. 산자야는 내세(來世)가 존재하느냐, 선악(善惡)의 과보(果報)는 존재하느냐는 형이상학적 문제에 관하여 일부러 애매하게 대답함으로써 확정적인 대답을 피하였다. 여기서 형이상학적 문제에 관한 판단 중지의 사상이 처음으로 표명되었다. 원시불교에서 무기사상(無記思想)의 기원으로 볼 수 있다.
신학으로 되돌아가면, 칸트나 R.H.로체의 영항을 받은 A.리츨은 인간이 아는 것은 현상뿐이나, 신은 현상이 아니기 때문에 알 수 없다고 주장하여, 신학은 종래의 형이상학과 같이 신을 존재하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매력있는 이상(理想)으로 다루어, 사람들에게 그 가치를 인정시키고 기독교는 도덕면에서만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불가지론(Agnosticism)
1. 일반적으로 불가지론은 지식의 가능성을 부인하는 이론을 총칭하는 것으로서, 회의주의(skepticism)와 동의어로 쓰인다. 그런데 '지식'은 갖가지 개념과 주장들을 함의하고 있는 단어이므로, 불가지론은 지식 그 자체의 가능성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지식(예컨대, 역사적.윤리적.종교적 지식)의 가능성을 부인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현대 과학이 발달한 이래로 가장 일반적이고도 설득력 있는 불가지론의 형태는 과학적 서술이나 논증이 불가능한 분야, 이를테면 신, 자아, 도덕적 가치 등에 관한 회의주의이다<참조: 실존주의>.
때로 이 불가지론은 모든 종교적 주장에 대한 깊은 회의를 느끼지만, 때로는 이론적으로만 불가지론이고 실제로는 종교적 신앙이나 확신을 동반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신앙'을 가지는 것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이론적으로 매우 정교한 불가지론을 사용하는 철학자들이나 신학자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불가지론을 불신앙과 동일시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오히려 그러한 신앙에 대한 철학적, 신학적 방어는 19세기 개신교 신학의 특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 의하면, 신학은 초자연적인 대상에 관한 지식이 아니라, (1) 신성한 실재에 대한 인간의 종교적 감성의 분석(슐라이어마허Schleiermacher, 1768-1834년)이거나, (2) 인간의 궁극적인 가치 판단에 관한
학(리츨 Ritschl, 1822-1889년)이거나, (3) 인간의 실존적 헌신에 관한 분석(키에르케고르 Kierkegaard, 1813-1855년)인 것이다.
2. 가장 일반적인 용법으로서의 불가지론은 우리는 신이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는 의견이다. 이런 일반적인 의미로서의 불가지론의 역사는 회의론의 역사와 연속성을 지니지만(그러므로 고대인들에까지 소급되지만), 이 용어 자체는 헉슬리(T.H. Huxley)가 만들어낸 것이며, 불가지론 특유의 철학적 태도는 종교적인 믿음에 관한 19세기의 토론 과정에서 나타났다. 그 토론에 참여한 사람들은 종종 그 말을 강경하고 특수한 의미로 사용한 결과, 불가지론자라는 것은 인간 정신의 내재적인 극복할 수 없는 한계들 때문에 신에 대한 지식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의미가 되었다. 명확하고 이해 가능한 속성들을 지닌 신이 존재한다거나 존재하지 않는다고 자신있게 주장하는 것은 이 한계들을 넘는 것이었다.
이 한계 의식은 칸트의 [Critique of Pure Reason](순수이성비판, 1781년)의 '선험적 변증론' 가운데 고전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사물의 전모(totality)를 파악하기 위한 질문을 제기하고 싶은 유혹이 거듭된다고 칸트는 언명하고, 그러나 이런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있을 수 없음을 증명할 수 있다고 그는 주장하였다. 이를테면 세계를 공간과 시간적으로 유한한 것으로 가정하건 공간과 시간적으로 무한한 것으로 가정하건 반론에 부딪친다. 또 다른 예로 어떤 사건은 다른 사건의 원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타당할지 모르지만, 그러한 개념이 어떤 것은(어떤 '제일원인'은) 전체로서의 우주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는데 쓰일 수는 없다. 이 '전체'의 경험은 하는 사람도 없고 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19세기의 불가지론 논증의 주류는 우주론적 증명에 대한 칸트의 비판을 엄밀히 따랐다. 비록 많은 불가지론 저술가들이 철저한 칸트주의자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들은 그들의 형이상학의 확신이 흄의 [An Enquir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1748년)에서 사변에 대한 그의 유명한(또는 악명높은) 비판에 의해 문제시되었다고 해서 흄주의자들일 필요도 없었다. 이 책에서 흄은 말하였다. "이를테면 우리가 신학이나 형이상학 서적을 손에 들었다면 이렇게 물어보자. '여기엔 양이나 수에 관한 어떤 추상적인 논증이 담겨 있는가?' 아니다. '여기엔 사실과 현존 문제에 관한 어떤 경험적 논증이 담겨 있는가?' 아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태워 버려라. 거기엔 궤변과 망상 외엔 아무것도 담겨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불가지론자로 자처하는 사람은 불가지론과 이를테면 기독교 신앙을 함께 가질 수는 없는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19세기 불가지론의 주요 견해들은 사실상 '종교적인 불가지론자들'에 의해 안출되고 신봉되었는데, 이 저술가들은 신성에 대한 무지의 정도가 아주 높을지라도 그것이 어떤 종류의 종교적 헌신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명칭상으로는 아닐지라도 사실상으로 이런 견해는 20세기에도 발견되는데, 그것은 근본적으로 신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지식은 포기하면서도 실제적인 생활방법으로 '신념'이나 '권위'나 기독교에 모든 것을 거는 사람들의 견해다. 그 원형적인 모델 역시 칸트에게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이론적 추리에 의하여 신이 존재한다는 논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부인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덕적 경험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신이 '요청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가장 영향력있는 논설인 '무제약자의 철학'에서 윌리엄 해밀턴은 19세기 말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그 훨씬 지나서까지도 그것을 발전시키고 다듬고 부인하는 논자가 줄을 잇게 딘 주제들을 간결하게 소개하였다. "정신은 '제한된 것과 제약적으로 제한된 것'밖엔 인식할 수 없다"고 그는 썼다. 제약이 없는 것 또는 절대적인 것을 생각하려고 하는 것은 "사고 자체가 실현되는 바로 그 제약들"을 생각에서 지워 버리려는 것이다. "우리의 과학이 고작해야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어떤 실재의 반영에 불과하다고 인정하기가 싫어서, 우리는 존재 그 자체를 파악하려고 노력한다...그러나 익시온처럼 우리는 신 대신 구름을 껴안는다..."
맨슬(H.L. Mansel)은 그의 뱀프턴강좌 [The Limits of Religious Thought] (1858년)에서, 절대자에 대한 지식이라는 것이 많은 점에서 지기모순적이라는 것을 상세하게 밝히려고 노력하였다. 이를테면 사람은 신이 인간의 속성들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래도 한계의 관념이 없이는 인격의 개념을 충분히 사유할 수 없으며, 사유는 사유자와 구별되어야 하는 등이다. 그러나 한계는 무한하고 절대적인 신성과는 모순된다. 하지만 그 결론은 완전한 종교적 회의론이 아니다. 왜냐하면 신의 본성에 관한 사변은 인간의 사유의 불가피한 제약에서 벗어나려는 헛된 시도일지라도, 그래도 '귀의심'을 통해서 그리고 도덕적 확신 가운데 신앙은 사변적 이성이 작용할 수 없는 곳에서 여전히 작용 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허버트 스펜서는 그의 [First Principles](1862년)에서 이 한정된 인간 이성의 상을 받아들였는데, 그것은 그 한계를 의식하고 그러면서도 (그의 시야에서) 그 한계들이 결코 실제의 한계들은 아니라는 것도 의식하면서였다. 과학과 종교가 더마다 완전히 인식이나 개념의 영역밖에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무에 불과한 것은 아닌 하나의 신비를, 하나의 불가해한 절대자를 증명한다는 것을 깨달음으로써 양자는 조정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19세기 불가지론의 원천은-특히 조직적인 종교를 단념한 불가지론의 원천은-지금까지 지적된 것보다 그 수가 많고 더 복잡하다. 단일 노선의 철학적 논증이 그것만으로 종교적 확신이나 환멸을 낳는 일은 사실 드물다. 최소한 세가지의 추가적인 원천이 언급되어야 한다.
첫째, 자연과학이 제공하는 자료와 이론의 점증하는 양은 '일견하여' 성서의 역사 및 우주론과 배치되었다. 지질학의 새로운 시간 척도, 비인격적이고 비도덕적인 다윈의 진화론, 그리고 성서 자체의 철저한 본문 및 역사 비평이 있었다.
둘째, 기독교 교육에 대한 체계적이고 엄격한 비판에 가해진 최초의 강력한 저항이 극복되자, 기독교의 신 개념 및 그 신의 세계 지배에 대한 허다한 우려를 공공연하게 표명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밀(J.S. Mill)은 사려깊은 사람 이라면 "이 혹성과 같이 솜씨없이 만들어지고 변덕스럽게 다스려지는 작품의 창조자 겸 지배자가 절대적으로 완전하다"고 생각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선언하였다.
그는 "지옥을 만들수 있고" 그 안에서 영원히 고통받도록 운명지워져 있음을 미리 아는 피조물들을 만들 수 있는 존재자를 "최고숭배의 대상으로...인정하는 것"에서도 '도덕적인 난관'을 발견하였다. 많은 저술가들에게 그에 못지 않은 거부반응을 일게 한 것은 자기들의 교리를 조금도 어긋남이 없이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고, 논증이나 명료성의 고장들을 신앙 강화의 계기로 삼을 뿐인 정통파의 고집이었다. 헉슬리는 직선적이었다. [블가지론과 기독교](1889년)에서 그는 "나와 다른 많은 불가지론자는 이런 의미에서 신앙은 혐오스러운 것이라고 믿는다"고 썼다. [불가지론](1889년)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진실로 믿거니와 기독교에 의해서...이룩되어 온 위대한 선이 유해한 교리에 의해서...즉, 그들의 다소 경악스러운 신조들에 대한 양심적인 불신을 도덕적인 범죄로, 아니 사실상 가장 극악한 죄로 취급하는 교리에 의해서 크게 상쇄되어 왔다."
셋째, 같은 저자들이 신학의 전형적인 증거와 추리의 기준들을 격렬하게 비판하고 그 기준들을 자연과학의 엄격하고 정밀하고 공평한 기준들과 대조시켰다. 밀이 보기에는 "금세기에 유행하고 있는 형이상학들 전부가 종교를 지지하도록 매수된 증거로 짜여진 단일 피륙이다." 사람이 세계의 자연을 자신이 실제로 관찰하는 그대로 고찰한다면 사람이 모험적으로 상정해 볼 수 있는 최상의 것이라야 선하긴 하되 유한한 신의 존재이며, 이 가능성조차도 밀은 불가지론자 답게 하나의 잠정적인 가설로 제시했을 뿐이다. 헉슬리에게 있어서 불가지론은 "하나의 신조가 아니라 하나의 방법, 즉 어떤 단일 원리의 엄밀한 적용을 그 본질로 삼는 방법"이었으며, 그 단일 원리란 "이성을 따를 수 있는 한도까지는" 이성을 따라야 하지만, 증명할 수 없는 결론을 확실한 것처럼 다루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조금만 더 정밀하게 판별했더라면 외경이 적지 않게 불어났을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고 그는 말하였다. 비슷한 기분으로 레슬리 스티븐은 신학자들에 대해 그들이 "점잖은 박물학자들같으면 바퀴벌레의 기원을 기술함에 있어서도 하지 못할 정도로 정확하게 전능하신 하나님의 본성"을 규정하려 한다고 비난했다(An Agnostics Apology, 1893년).
신학자들이 그들의 불가지론적 비평가들의 기분을 상하게 한 논증들의 결함을 얼마나 시정했는가, 또는 얼마나 시정할 수 있는가를 평가하는 것은 이 기사의 취지가 아니다. 하지만 그 논쟁과정에서 몇가지 영구적인 가치가 있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명백한 교훈의 하나는 어떤 불가지론적 입장들의 기묘한 불안정성 또는 애매성이다. 방금 인용한 저술가들 중의 많은 사람이 그랬듯이, 우리도 사람이 어떤 신의 존재를 위한 논증들을 설득력있는 것으로 인정하지 않게 된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그는 이렇게 판단한다. 즉 경험은 관찰할 수 있는 세계에 국한되며, 이성은 비록 그 경험의 제약들과 전제 조건들을 완전히 드러낼 수는 있을지라도 우리의 유에 대한 경험을 확대시킬 수는 없다고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종교적인 성격의 사람은 실재를 인식할 수 있는 것과 인식할 수 없는 것으로 나누고 신의 특징들 가운데 많은 것을 후자에 귀속시키고 싶어진다. 그러므로 '소극 신학'(negative theology)과 종교적 색채를 띤 불가지론은 가장 가까운 사이일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철저한 철학적 비판도 그러한 입장 모두가 조리가 서지 않는다거나 '숨은 유신론'을 내포한다는 것을 논증할 수 없으며, 각 경우를 개별적으로 검토하지 않으면 안된다. 알려지지 않은 것 또는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어떤 종교적 태도들은-이를테면 경탄과 경외의 태도들은-완전히 타당한 것이라 전연 비판을 받지 않을 수 있는 반면, 다른 태도들은-알려지지 않은 것과의 개인적인 조우를 기대하는 것 같은 태도들은-가장 비판을 받기 쉬울 것은 분명하다. 역사에서 몇가지 실례를 찾아볼 수 있다.
1896년 제임스 워어드는 [Naturalism and Agnosticism](1899년)으로 애버딘 대학에서 '기퍼드 강좌'를 했다. 이 강좌 가운데는 해밀턴-맨슬-스펜서의 연구법의 기초적인 전제 조건들에 대한 단호한 공격이 들어 있었다. 자연과학은 '불가지'의 바다 가운데 표류하는 어떤 전체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고 워어드는 말하였다. 우리가 아는 세계는 그 뒤 또는 너머에 놓여 있는 어떤 '궁극적인 실재'를 은폐하는 '외관'으로 되어 있지 않다. 어쨌든 불가지인 것은 불가지인 것이다. "불가지가 절대적일 경우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더 알 수있는 것이 있다고도 없다고도." 하지만 스펜서 및 그와 같은 성격의 저술가들은 그들의 '절대'에 관해 꽤 많은 신비로운 것들을, 그들 자신의 설명에 의하면 결코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하였다.
R. 플린트(Agnosticism, Croall lectures, 1887-1888년) 역시 종교적인 불가지론의 (그가 본 대로의) 일어다의의 허위들을 비난하였다. "정신이 '불가지한 사물'을 편들어서 할 수 있는 것이란 거짓 뿐이다." 레슬리 스티븐은 자기 만족적인 사람들을 비꼬아, "당신의 의심들을 신비라고 해라. 그러면 그것들이 당신을 더 이상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고 말하였다.
이런데도 사려깊은 사람이 불가지론자일 수 있겠는가? 논리적 실증주의자들은 "없다"고 대답하였다. [Language, Truth and Logic](1936년)에서 에이어(A.J. Ayer)는 "신의 본성에 관한 모든 발언이 무의미한 것"인 만큼 신에 대한 불가지론자의 진술들 역시 유신론자의 그것 못지 않게 무의미하다고 주장하였다. 양자 모두 "어떤 초월적인 신이 존재하느냐 하는 질문은 순수한 질문이다"고 잘못 가정하고 있다. 실증주의와 후기 실증주의자의 논리적 분석에 따르면 신학상의 문제는 증거와 논증의 문제가 아니라 의의의 문제이다. 만일 '신'이 무의미한 단어라면, '어쩌면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문장 역시 무의미하다.
상황을 그렇게 진술함으로써 실증주의는 그 접근법상의 특징이라고 믿는 것으로 관심을 극적으로 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불가지론에 관한 초기의 논쟁과의 몇개의 중요한 노선들의 연속을 모호하게 했다. 19세기가 끝나기 전에, 플린트는 해밀턴 비평에서 이렇게 썼다. "Credo quia absurdum(불합리하기 때문에 믿는다)만이 그 관념부터가 자기모순적임을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어떤 신을 우리가 믿을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철학자에게 적합한 유일한 좌우명일 수 있다." 신의 개념 자체가 본질적인 비논리성을 지니고 있을 가능성, 불합리하고 무의미한 것일 가능성이 충분히 인식되었다. 스펜서는 세계의 기원 및 시작의 문제들과 씨름한 끝에, 여기서의 문제는 확실성의 문제가 아니라 '상상가능성'(conceivability)의 문제라고 말하였다. 어떤 외적 작용인의 자존 및 창조와 같은 관념들은 "불합리하고 가공적인 성질의 상징 개념들을 내포한다." 그의 의미론을 논리실증주의자는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우리의 주장들은 관찰에 의해 진위 구별을 하기 위한 요건들에다 붙들어 매었다. 다시 한번 스펜서와 비교해 보라. 그는 1899년에 이렇게 썼다. "지성은 현상들과의 교제에 의해서 그리고 그런 교제를 위해서만 짜여지는 만큼, 우리가 현상들 너머의 어떤 것을 위해 지성을 발휘하려고 할 때 우리는 넌센스에 빠진다." 물론 덧붙여 말해야 할 것이, 실증주의자들과 그후의 분석철학자들은 그들의 엄격한 계획을 그들의 선배들이 했던 것보다 훨씬 더 철저하고 일관성있게 실행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거기에 노선들의 연속이 있으며, 그들은 다시 칸트의 '선험적 변증론'과 데이비드 흄까지 거슬러서 이어지는 같은 노선들인 것이다. 그들은 신에 관한 논의가 입증할 수 없는 논의라는 이유로, 또는 '신'이라는 개념이 내적인 모순들을 내포한다는 이유로 종교의 성과와 태도들을 배척하는 사람을 묘사하는데 '무신론자'라는 말을 쓰는 것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신의 존재에 관한 비독단적인 의문이나 무지로서의 불가지론이 나올 여지는 아직도 있는가? 아직도 있다고 말한 만한 경우를 다음의 노선들에 따라서 만들 수 있다. 우리 말로 어떤 어구를 설명할 경우, 그리고 그 어구가 어떤 종류의 존재자에 '결부'되는 것일 경우, 그 어구 사용을 위한 일련의 규칙을 마련할 필요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결부'를 어떠한 식으로 해야 하는가를 지시할 필요도 있다. 그 지시는 직접적인 지적을 통해서 할 수도 있고 아니면 그 실재를 간접적으로 확인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식으로 할 수도 있다. 이것이 신의 경우에 될 수 있는가? 지적은 분명 부적당한 것이, 신은 세계 속에 있는 유한한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때 신학자는 많은 선택의 길을 권할 수도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즉 신은 세계가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느껴질 수 있는 그런 존재자로, 세계의 불완전들의 완전인 존재자로, 경외감과 신비감(the numinous: 신과의 영적 교섭에 있어서 느끼는 매혹과 두려움이 교착한 감정)의 체험 가운데서 그 현존이 어렴풋이 느껴지는 존재자로 식별 될 수 있다. 명확한 방향 제시는 여기서 끊겼고, 신학자가 자기의 어법이 기술적이거나 논증적이라기보다 완곡하게 환기적임을 인정하는 것도 당연하다. 이 어법은 신에 관한 언명들이 하나의 '결부'를 갖는다는 것을 입증하는데 성공하는가? 종교적 경험에 민감하지만 동시에 예리하게 논리적이고 비평적인 사람들 에게는 그것이 가까스로 성공하는 것으로 느껴질 수도 있고 아슬아슬하게 실패하는 것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이 두 개의 선언지 사이에서 양자를 단호하게 판별하는데 도움이 될 뚜렷한 결정 방법을 찾지 못하고 불안하게 흔들리는 수도 있을 수 있다. 이 마지막 부류에 속하는 사람이야말로 불가지론자임에 틀림이 없다. 그의 불가지론은 종교에 대한 일반 언어학적 비평들을 완전히 고려하며, 말의 의미에 대한 반성과정에서 그는 언어적인 의미를 언외적인 의미에 '결부'시킬 필요를 느끼며, 이 문제 즉 '결부'의 문제에 대한 그의 대답은 그를 가장 깊은 불확실 속에 빠뜨린다.
방금 요약한 그 온갖 동요와 불안을 지닌 그런 기질이 아마도 불가지론의 많은 종류 가운데 가장 독창적인 결실을 맺을 종류일 것이다. 믿을 마음이 없을 경우에는 믿지 않는 것에 대한 철학적 관심이 거의 있을 수 없다. 종교적인 체험이 거의 또는 전연 없었고, 신자로 하여금 그 체험을 표현하기 위해 어법과 논리를 어기는 것인 줄 알면서 어기게 만드는 잊을 수 없는 야릇함의 의식이 없었을 경우, 그 체험의 가능한 해석들-유신론적, 범신론적, 이신론적 해석들-을 정밀하게 탐구할 동기가 거의 있을 수 없다. 역사가 말해 주듯이 이런 기질의 불가지론자들을 발견하기가 오늘날에는 결코 쉽지 않지만 1세기 전 불가지론의 논쟁이 최고조에 달했을 대는 그렇지 않았다. 그 논쟁의 대 저술가들이 대개의 경우 기독교 신앙 가운데서 자랐고, 기독교 신앙에 관계했었고, 그리고 후에 당혹스러운 방향 상실감을 겪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철학적 신학의 문제들을 진지하게 생각하고자 한다면, 신자가 자기가 쓰는 정상적이 아닌 어법을 쓰지 않을 수 없다고 느끼는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어떤 불신의 보류, 또는 최소한 상상적인 모험이 있지 않으면 안된다. 그 신자는 그것이 정상적이 아님을 충분히 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부족한 것으로 생각되는 정상적인 어법이라고 생각하지, 자기의 체험과 그 체험들에 대한 자기의 해석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불가지론자는 흔히 시인이 그러는 것처럼 정상적인 어법은 때로 어길 필요가 있음을 안다. 그는 또 우리의 언어 장치를 그렇게 근본적으로 교란하는 것이 어떤 극히 의심스러운 (또는 완전히 무가치한) 논법에 따른 어떤 사
고의 움직임들을 모호하게 할 수 있음도 알고 있다. 이것이 특히 유신론의 경우에 일어난 것일까? 이 모호성을 탐구한 불가지론자는 알 수 없다고 보고한다. 철학과 신학의 건강을 위해 불가지론자는 탐구를 계속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Posted by 바람의 흔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