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권 타도'하면 안되는 이유 - 태국 정치를 보며 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한다.



엇그제 올린 "이명박 정권은 독재정권인가? - "독재가 그리운 사람들"이라는 글을 읽고."에 대해 많은 분들께서 관심을 가져주셨고, 댓글로서 다양한 의견의 개진해 주셨습니다. 
의견을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하나하나 읽고 많은 참고를 삼았다는 점을 이 글을 통해 말씀드립니다.

저는 앞서 올린 글에서, 지금의 이명박 정권이 '전통적 의미의 독재정권'은 아니라는 것을 지적하면서 "지금의 정치적 상황이 '국민의 의사가 반영된 선거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에서 문제의 해결 역시 '국민의 의식을 변화시키는 것'을 통해서만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할 일은 '항쟁에 의한 독재의 타도'가 아니라 '정부정책에 국민의 의견을 반영하도록 하는 시민운동과, 정권의 부당한 권력행사에 대한 저항운동'이라고도 말씀드렸습니다.

 ※ 참고 : 이명박 정권이 정책결정 과정에서 여론을 배제하는 문제에 대해

대의민주주의에 관한 통설의 입장은 선거에 의해 선출된 사람에 대한 권력위임의 속성은 '자유위임'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선출된 대표는 국민에 의해 선출되기는 하지만 '국민의 의사'가 아니라 '자신의 양심'에 따라 자유로이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한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본다면, 이명박 정권이 국민의 의사에 반하여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것만을 두고 '독재'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특히, 지난 17대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는 '대운하'등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몇가지 사안을 공약했고, 국민들은 현재 이명박 후보가 실행하고 있거나 실행할 예정인 많은 정책에 대해, 적어도 '인지'하거나 '예상'하고 있었다는 주장이 가능합니다.

물론, 현재 대한민국 국민들의 민주주의와 권력위임의 성격에 대한 일반적 정서는 통설의 '무기속위임'이 아니라 '기속위임'에 가까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현행 헌법질서는 기속위임을 강제할 어떠한 법적 절차도 구비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이와 같은 국민들의 생각은 사실상 관철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저의 이러한 주장을 '안이한 현실인식'이라고 질타하신 분도 계셨지만, 저는 태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한 고찰''한나라당이 여전히 영남에서 맹주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지역주의적 정치문화 및 박근혜씨가 대선후보 지지도 1위를 보이고 있는 현실'에 대한 검토를 통해, '이명박정권 타도 주장'이 얼마나 위험한 발상인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꺼번에 두 이야기를 다 하자면, 글을 쓰기도 버겁고, 글이 지나치게 길어지는 문제가 있어서, 이번 글에서는 태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해 검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피시트 웨차치와 총리 - 2008년 12월 친탁신파 정당인 PPP의 해산 이후 민주당 총재인 아피시트가 정권을 잡았다.]


1. 태국 민주주의의 위기 - 위기의 원인은 절차적 정당성의 부인

<태국문제에 대해 검토하는 과정에서 신문 기사 및 여러 블러그의 글들을 참조했습니다. 특히, '태국정치의 이해', '수완나품공항점거관련 태국정치상황에 대한 이해'라는 글은 태국의 상황에 대해 비교적 상세히 정리되어 있어서 많은 참고가 되었습니다.>

먼저, 태국의 정치 상황 일지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태국 정치 상황 일지

 2001년 6월 탁신이 설립한 타이락타이(TRT)당 총선 압승, 탁신 총리 취임
 2005년 2월 TRT당 재집권(총선에서 총 500 의석수 가운데 377석을 차지)
 2006년 2월 탁신 일가, 탈세 의혹으로 반정부 시위 격화
           4월 조기 총선 TRT당 승리 (475석 차지)
        9월 군부 쿠데타로 탁신 총리 축출
 2007년 5월 헌법재판소, TRT 4개 정당 해산 명령(2006년 4월 총선 선거부정을 이유로)
        8월 대법원, 탁신 부부 체포영장 발부
       12월 탁신계 신당 국민의힘(PPP) 총선 승리 (233석 차지) 
 2008년 1월 PPP 중심 연정 출범, 탁신계 사막 순다라벳 총리 취임
        5월 반탁신계 국민민주주의연대(PAD) 반정부 시위 시작
        8월 탁신 부부 영국도피, PAD 시위대 정부청사 점거
        9월 2일 민·민 충돌로 1명 사망, 40명 부상해 비상사태 선포
           9월 9일 헌재 (공직자 겸임금지 위반으로)사퇴 명령으로 사막 총리 사퇴,
                 솜차이 옹사왓 총리 선출
           10월 7일 국민민주주의연대(PAD)가 이끄는 시위대가 솜차이 총리의 의회 출석을 막기 위해
           의사당을 봉쇄하려다 경찰과 충돌해 3명이 사망, 400여명 부상.
        11월24일 PAD 시위대, 국제공항 2곳과 의사당 등 점거로 비상사태 선포
           12월 헌재, 선거부정을 이유로 탁신계 PPP 등 집권 3당 해산 명령, 
                  정부, 아시아 지역 16개국 정상회담 연기
           12월 태국 의회, 민주당 중심 새 연정 합의, 아피시트 웨차치와 총리 취임(17일)
 2009년 3월 26일 탁신 지지 ‘독재저항민주주의 연합전선(UDD)’ 시위대 정부청사 포위
        4월 9일 UDD 시위대에 택시기사들 가세해 방콕 시내 9곳 교통 마비
        4월 10일 아시아지역 16개국 정상회담 파타야에서 시작
           4월 11일 UDD 시위대 정상회의장 점거, 회의 취소 및 비상사태 선포 

위의 일지에 간략한 설명을 덧붙여, 태국의 정치상황에 대해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탁신 총리의 정치 -
탁신은 태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총리였습니다. 자신이 창당한 정당의 총선 승리를 통해 집권한 탁신 총리는, 하류층과 소외지역에 대한 지원 정책을 통해 사회계층상으로는 하류층, 지역적으로는 그의 출신지인 치앙마이를 중심으로 한 북부지방과 태국에서 가장 낙후된 이산지방(코랏,부리람, 농카이,수린,우본지역)을 포함하는 북동부지역의 지지를 기반으로 강력한 권력을 획득하고, 강력한 일방주의 노선을 고수하여 왔습니다.
그는, 30바트만 내면 누구라도 병원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의료보험 제도, 농가 부채의 3년 유예, 농촌에 대한 100만 바트의 사업자금 지원 등을 강력하게 추진하였으며, 2003년 초에는 마약과의 전쟁을 실시, 3개월만에 약 2,300명의 마약 사범 혐의자들이 사살되었고 수 만 명이 체포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인권침해 논란이 있었습니다. 또, 2004년 태국 남부의 무슬림 소요사태에 대한 강경 진압 과정에서 많은 말레이계 무슬림들이 살해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탁신 총리는 그의 친그룹(탁신의 이동통신 회사) 주식을 싱가폴의 다메색 홀딩스에 매각하면서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것과 총리재임시절 국유지를 헐값에 매매(부인명의로 매입)한 사건 등이 메스컴에 알려지면서 반정부 시위에 시달렸으며, 조기총선을 통해 상황을 반전시키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군부 쿠테타에 의해 실각하게 됩니다.
※ 탁신 총리의 하류층을 위한 정책과 일방주의 노선, 국민의 지지를 기반으로한 강력한 권력은 국왕파와 중산층의 이익을 해치는 것으로 인식되었습니다.

탁신 총리의 실각 - 
2006년 9월 군부쿠테타가 발생하고, 푸미폰 국왕이 사실상 이를 추인한 상황에서 탁신총리는 영국으로 망명했으며,
타이락타이당 등의 집권당은 선거부정을 이유로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산되었습니다.(이 헌법재판소 판결은 군부가 쿠테타를 일으킨 후 2007년에 개정한 '개정헌법'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 태국의 헌법 : 현행 태국 헌법 237조는 정당 간부가 선거부정을 저질렀을 경우 선관위와 검찰의 고발이 있으면 헌재는 소속 정당의 해체와 함께 정당 간부들의 정치활동을 5년간 금지하는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규정은 2006년 9월, 쿠테타를 일으킨 군부에 의해 실시된 2007년의 헌법 개정에서 추가된 것이다.
태국 헌법재판소는 2007년 5월에도 탁신이 창당한 타이락타이(TRT)가 조기 총선에서 선거부정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정당해체와 함께 TRT 간부 111명에 대해 5년간 정치활동 금지 명령을 내린 바 있으며, 2008년 12월 선거법 위반이 확인된 탁신 계열의 정당 국민의힘(PPP)을 비롯해 찻타이, 마치마티파타야 등 집권 3당에 대해 해체 명령을 내렸다. 또 솜차이 옹사왓 당시 총리 등 PPP 소속 37명을 포함, 3당 소속의 당간부 109명이 5년간 정치활동이 금지됐다.(출처 : 연합뉴스 관련기사)

친親탁신파의 집권 - 

그러나
친탁신파가 만든 정당인 국민의힘(PPP)이 2007년 12월 실시된 총선에서 승리함으로서 다시한번 정권을 잡게 됩니다. 집권당인 PPP는 군부가 개정한 헌법의 재개정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맙니다.

반反탁신파의 정권 퇴진운동 -
반탁신파인(입헌군주제를 강력히 지지) 국민민주주의연대(PAD)가 주도하는 정권퇴진운동으로 정부의 국정 장악력이 상실된 상황에서
헌법재판소친탁신파 정당인 PPP의 해산을 명령합니다.

반탁신파의 집권 -
선거부정을 이유로 친탁신파 정당인 PPP가 강제 해산되자, 민주당의
아비싯 웨짜지와 총재가 총리로 선출되어 반탁신파가 집권하게 됩니다. (친탁신파 의원들이 주도하는 정당인 '태국공헌당' 일부의 지지를 받음)

친탁신파의 정권 퇴진운동 -
독재저항민주주의 연합전선(UDD)이라는 이름의 친탁신계 단체가 주도하는 반정부 시위로 아피시트 웨차치와 총리가 이끄는 민주당 정권의 국정 운영에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태국의 정치상황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하였습니다.
더 자세한 사항은 관련기사나 위의 링크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정리한 것만 보더라도 문제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탁신총리의 부정부패가 아닙니다. 탁신총리의 부정부패는 반정부 시위나 쿠테타의 빌미는 될 수 있지만, 그것 만으로는 그의 실각의 정당성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애초의 문제는 '선거에 의해 합법적으로 선출된 권력을 군부쿠테타를 통해 축출했다는 것'과 '푸미폰 국왕이 이를 추인했다는 것'입니다.

헌법재판소가 부정선거를 이유로 탁신이 이끄는 타이락타이당 등의 집권당에 대해 해산을 명령한 것도, 군부가 쿠테타를 통해 개정한 헌법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는 측면에서, 어디에서도 그 정당성을 찾기 어려워 보입니다. 한마디로, 선거를 통해 탁신에게 부여된 권한을 거둬들이는 과정 자체가 심각한 비민주성을 띄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후, 탁신 총리가 축출된 상황에서 친탁신계 정치인들의 정당인 국민의힘(PPP)이 총선에서 승리함으로서, 다시 절차적 정당성을 획득한 정권이 형성되게 됩니다.
그러나, 반탁신계인 국민민주주의연대(PAD)가 주도하는 지속적인 반정부 투쟁에 의해 친탁신계 정권은 국정장악력을 상실하게 되고, 이러한 상황에서 헌법재판소는 또다시 부정선거를 이유로 PPP의 해산을 명령하게 되는 것입니다.(이 해산명령 역시 군부가 쿠테타를 통해 개정한 헌법의 독소조항에 그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선거에 의해 선출됨으로서 절차적 정당성을 획득한 정권을 정치적 반대파가 '실력으로 와해시키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왕을 지지하는 국왕파와 중산층으로 이루어진 보수파가 중심이 된 반탁신계는 1차, 군부 쿠테타와 헌법 개정을 통한 헌법재판으로 탁신 총리와 집권당을 축출했고, 2차로, 위력으로 (국민의 지지를 통해 다시 정권을 잡은) 친탁신파의 국정 운영을 방해함과 아울러, 헌법재판소를 이용해 정당을 해산시킴으로서 정권을 와해시켰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위력의 행사를 통해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권을 와해시킨 후 집권한 지금의 정부는 친탁신파 국민들의 심각한 반대에  직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막, 악순환의 제1순환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와 같은 태국의 상황은, '정치의 부재', '국민 상호간의 투쟁'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민주적 선거에 의하여 선출된 정부가 정치적 반대파에 의해 두차례나 (선거, 탄핵 등의 합법적인 절차가 아닌) 비정상적인 방법을 통해 끌어 내려짐으로서 '총선을 통해 형성된 국민의 주권적 질서 자체를 와해시킨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주권적 질서'대신에 '국민 상호간의 대립과 투쟁'이 그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지요.

물론, 태국은 보수파라고 할수 있는 정치세력이, 많은 국민의 지지를 얻고 있는 정치세력을 위력으로 타도한 경우이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이명박 정권 타도투쟁'에 반대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절차적 정당성의 보장'이라는 '최소한의 약속'을 통해 유지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 명백히 독재정권이라고 말 할 수 없는 지금의 이명박 정권을 '일부 국민의 위력 행사'를 통해 퇴진하도록 한다면, 그러한 행위 자체가 '민주적 절차를 통해 이룩된 주권적 질서 자체를 파괴하는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ps. 
제가 밤새 이 글을 준비하느라 고생한 사이에...
한나라당 넘들은 MBC 100분 토론을 이용해 또한번 X소리를 한것 같더군요.
저는 100토를 보면 혈압이 오르락 내리락 해서 요즘은 아예 안보는 편입니다만, 아침부터 원성이 자자한 것을 보니 한나라당 의원들의 활약상이 느껴집니다.
게다가,  OBS 경인 TV에서 "이명박 정권이 노무현 대통령을 독방에 수감할 구체적인 준비까지 했다는 보도"를 한 것을 보니,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주체하기가 어렵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곧, 이 글에 이어지는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울 수는 없으니, 도리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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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의 흔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