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삭감은 최저임금제 자체를 부정하는 것


요즘, 우리는 종종 근본적인 질문에 부딧히고 있습니다.
그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 그리고 일부의 가진자들 입니다.

그들은 국민이 선거를 통해 대의자를 뽑으면서 민주주의는 끝난 거라고 말하면서,
우리에게 "민주주의가 뭔데?" 라고 묻고 있습니다.
또, 법에서 정해 놓은 권한을 넘어 권력을 행사하고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면서, 
"법치주의가 뭔데?" 라고 묻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최저임금을 삭감하겠다고 말하면서, "시장의 원리가 뭔데?" 라고 묻고 있습니다.

'시장의 원리'하면, 우리는 '경쟁의 원리가 작동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가격'과 '효용성'이라는 두가지 측면에서의 경쟁을 통해 재화가 유통되고 분배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결국에는 효용성이 높고 가격이 싼 상품이 가장 먼저 손님을 만나게 된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시장주의자 들은 자유시장은 '노력한 만큼 평가받는 곳'이라고 주장합니다.
좋은 상품을 싼 가격에 만들어 팔면, 성공을 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말은 참 그럴듯 해보입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이들의 주장이 전혀 현실과는 다르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시장은 공정하지 않습니다. '효용성'과 '가격'으로만은 시장에서 승리할 수가 없습니다.
에너지 혁명을 일으키겠다며 힘차게 출발했던 '세녹스'가 우리나라에서는 '불법'이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저가 휴대폰'은 국내에서는 아예 구경을 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튼, 오늘은 이런 이야기는 좀 접어 두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최저임금제' 문제이니만큼 거기에 집중해야 하니까요.
그럼, 기본적인 이야기 부터 먼저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노동자는 '사용자'의 '고용'과 업무지시'에 응해서 '재화를 생산'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아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을 일컷는 말입니다.
우리가 '정치경제'시간에 배웠던 시장의 원리는 노동자의 노동행위에 의해 만들어진 '재화나 서비스의 가치평가' 과정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그럼, 노동자의 임금은 어떻게 정해지는 것일까요?
노동을 제공하고자 하는 노동자와 고용 수요를 가진 사용자간에 '노동시장'이라는 것이 형성되게 되고, 그 노동시장을 통해 임금이 결정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노동시장은 언제나 노동자에게는 불리한 시장입니다.
반면에 언제나 사용자에게는 유리하게 되어있습니다.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노동생산성'이 높아지고, 점점 노동수요가 줄어든다는 점,
시장이 세계로 확대되고 국가간 자본 이동이 자유로워 지면서 '글로벌 아웃소싱'(자본이 해외의 생산기지나 소비지역으로 직접 이동하여 제품을 직접 생산하는 것.)이 확대됨으로서 국내 노동수요가 줄어든다는, 두가지 측면에서 노동자들은 언제나 불리한 위치에 서게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노동 공급은 많고 노동 수요는 그에 비해 적을 수밖에 없으니 시장의 원리를 여기에 적용하면 임금은 갈수록 낮아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노동자가 일방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 헌법은 노동자에게는 '노동 삼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헌법 제33조
①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그러나, 지난 1997년에 우리나라가 국가적 외환위기를 당하고, IMF가 우리에게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를 요구한 이후로 '근로자 파견 범위 확대'와 '비정규직 적용 범위 확대'가 계속되어 왔습니다.
파견근로의 확대와 비정규직의 확대는, 노동자들에게는 유일한 무기라고 할 수 있는 노동조합을 무력화 시켰고, 이것은 노동자가 사용자와 대등한 위치에서 협상 할 수 있도록 하는 수단을 제거한 것이었습니다.
그와 함께, 노동자들이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과 같은 사회 안전망으로 부터 멀어지게 하였습니다. 게다가, 파견근로자나 비정규직은 임금 외의 '수당'이나 '상여금'을 받지 못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가져온 것이었습니다.

1.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 파괴
똑같은 일을 하는 사람의 임금이 다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정규직인 사람과 비정규직인 사람이 동일한 일을 하면서도 임금 차이는 두배 이상인 경우를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노력한 만큼 대가를 받는다."는 시장주의자들의 원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사용자 단체는 노조 전임자들에 대해서는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2. 노동을 통해 창출한 재화나 서비스의 평가액과 임금간의 차액을 보상 받지 못함.
임금은 노동자가 창출한 '가치의 가능성에 대한 보상'이지 '가치평가'에 대한 보상이 아닙니다.
한마디로, 실제 노동자가 창출한 가치와 노동자가 받은 임금의 차이가 현저히 클 경우에는 이에 대한 보상이 있어야 하는데, 보통은 이것을 각종 '수당'이라는 명목으로 받거나, 상여금의 명목으로 돌려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파견 근로자나 비정규직은 수당이나 상여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사용자에게 제공한 노동의 대가인 임금과 자신이 실제로 창출한 가치의 평가액 간의 차액을 보상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한마디로, 파견근로자와 비정규직은 시장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노동을 하는 셈입니다.
이것을 두고 시장의 원리가 적용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야기가 한참 길었네요.
이제야, 오늘의 핵심이자 본론이라고 할 수 있는 '최저임금제'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 헌법은 다음과 같이 최저임금제에 대해 정하고 있습니다.

헌법 제32조
①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사회적·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의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하여야 하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최저임금제를 시행하여야 한다.

최저임금제는, 노동자들이 사용자에게 노동을 제공하고 받은 임금으로 최소한의 사회적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정해놓은 것입니다. 만일 노동시장의 경쟁이 심화되어, 노동을 제공하고 받은 임금으로도 노동자가 삶을 영위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면, 사회의 안정과 영속성에 심대한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노동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 노동을 통해서 최소한의 사회적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그야말로 최소치를 정해놓은 것입니다.
노동자는 노동을 통해 받은 임금으로 스스로의 삶을 영위하고, 가치를 실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2세를 생산해 교육하고 사회인으로 키워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사회의 영속성이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최저임금은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한 최소비용에 관한 것입니다.
아무리 일을 해도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없는 사회라면, 그런 사회에서의 법질서나 국가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최저임금제는, 노동자에게 일을 시키고도 그 노동자가 사회적으로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을 만큼의 임금을 주지 못하는 사업은 '비인간적인 사업', '무가치한 사업'이라는 것을 천명한 것이며, 우리 사회가 노동자와 사용자와의 '공존'을 전제한 사회라는 것을 명백히한 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우리 경제 상황을 보면, 과거에 비해 실질임금은 더욱 악화된 상황입니다.
물가와 교육비는 올랐지만, 파견근로자의 확대와 비정규직의 확대 등으로 인해 노동자들의 수익은 심각한 하락을 겪고 있습니다. 게다가 지금의 경제 위기는 날로 실업율을 높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마디로, 현행 최점임금으로도 '최소한의 사회적 삶'은 보장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여기에서 더 최저임금을 삭감하자는 것은, 최저임금제의 헌법적 목적을 무시하고, 사회적 기능을 무시하겠다는 발상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조차 살 수 없게 하는 최저임금제는 이미 최저임금제가 아닙니다.
저들이 진정으로 사회의 안정과 평화를 바라는 것인지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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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의 흔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