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를 극복하기 위한 연대 - 공화주의적 가치를 전면화 하자


< 참조 : 공화주의에 대한 기초적 이해 , 공화주의는 새로운 시대의 열쇠 >


지금 우리 사회는 일대 격변의 과정에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이 격변을 좌우하는 주인공은 '부패한 시민'과 '선량한 시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서로 명백히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서로 혼재되어있는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어느 한사람이 어떤 때는 부패한 시민의 얼굴을 하고, 어떤 때는 건전한 시민의 얼굴로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부패한 시민을 단지 척결해야 할 적이 아니라, 극복해야할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인식하는 것이 보다 타당할 것입니다. 

부패한 시민은 공공의 이익이 아닌 사적 이익에 복종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의 민주주의는 개인의 이익을 관철하는 수단이며, 이들의 선거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질서를 만드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개별적 이익을 관철하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시민이 부패한 가장 큰 이유는 신자유주의의 만연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그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겠습니다.)

따라서, 다수의 부패한 시민이 자신의 이익을 과철시키기 위한 정치행위를 할 때, 그에 따라 희생되는 사람이 있는 것은 거의 명백한 일입니다. 서울의 부동산가 지지를 위한 재개발 사업이 용산 철거민들의 희생을 전제로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하려는 다수의 사람들을 위해, 소수는 언제나 일방적 희생과 예속을 강요당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사람들이 득세하는 민주주의는 '예속적 질서가 사라지는 사회'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예속적 질서' 그 자체를 지향하게 됩니다. 이명박 정권의 탄생은 민주주의를 공공의 이익이 아니라 권리를 행사하는 각자의 개별적 이익에 복종시킨 사람들의 승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민주주의를 '공공의 이익을 위한 질서의 창출의 도구' 라고 인식하는 사람들의 명백한 패배였습니다.

예속이 없는 질서라는 것은 그야말로 '공존적 질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런 질서는 다수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가(소수) 희생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와 같은 질서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다른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희생되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지금은 부패한 시민들이 득세하는 시대입니다. 부동산 투기를 위해 집을 사고, 그 집의 가격을 지지하기 위해서 사악한 세력과 결탁한 수많은 시민들은, 자신들이 선택한 한줌도 안되는 이익을 위해 스스로 자유를 반납해 버렸다는 사실조차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도가 야권에 대한 지지도를 모두 합친것 보다도 높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일찌기 마키아벨리가 지적한 바와 같이, 부패한 로마의 시민들이 로마를 다시금 자유가 상실된 제정으로 회귀하게 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줌도 안되는 사욕을 위해 시민들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팔아버리는 일이 만연하게 될 때, 우리는 점점 자유로부터 멀어지고 야만적 질서와는 가까워질 것입니다.

우리시대의 시민들은 자유의 상실을 막고 야만적 질서를 제거하기 위해 싸워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뿔뿔이 흩어진 개별적 시민이 아니라 하나로 뭉쳐지고 연대하는 '함께하는 시민'이 필요합니다. 시민들이 흩어져 있게 되면, 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위한 방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게 되고, 결과적으로 사적 이익에 종속되어 공적 이익을 희생시키는 대열에 가담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서로 연대하고 우리의 자유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함께 사워야만 합니다. 서로 연대함으로서 우리는 부패한 시민의 대열에서 우리 스스로와 우리의 가족들을 끌어 내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가 연대를 유지하고 확대하기 위해서는 서로에게 '확신'을 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만들고자하는 새로운 질서에 대한 희망입니다. 
희망이 없다면 사람들은 아무런 투자도 하지 않을 것이고, 자신들의 이익을 희생시키려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민주주의는 승자독식과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전쟁터일 뿐, 시민들의 자유를 위한 질서의 창출과는 무관한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한나라당이 집권하든, 민주당이 집권하든 그 큰 흐름은 젼혀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가 부시행정부에 비해 진보적이었다고 할 수 있지만, 그들 역시 신자유주의적 대세를 거스를 수 없었던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단지 약간의 지체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시민들은 서로 뿔뿔이 흩어져 서로의 이익을 위해서 서로와 싸우게 될 것입니다. 그러는 가운데 시민들의 자유, 대한민국의 자유는 사라져갈 것입니다.

그것은 '시장경제와 복지를 다 중요시하겠다.'는 식의 흐리멍텅한 것으로는 안됩니다. 가치와 중심을 분명히 제시해야만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비젼이 불분명하고 희미한 것보다 큰 해악은 없는데, 그 이유는 그런 정치세력과 함께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포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몇몇 학자들이 참여정부를 공화주의를 지향한 정부였다고 평가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우리나라에서 공화주의적 가치지향과 가장 근접해 있는 정치세력이 사실상 우리들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 볼때, 우리가 '공화주의적 국가공동체의 건설'을 우리의 중심 가치로 삼고, 이를 전면화 하는 것은 매우 시의적절하고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그렇게 함으로서, 많은 시민들이 우리의 비젼을 보다 분명히 인식할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을 실현함으로서 얻어지는 공적 이익에 대해 분명히 인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가치'를 중심으로 굳게 연대할 수 있고, 스스로 부패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시민들이 부패로부터 벗어나는 그 순간, 새로운 공동체의 질서가 도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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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의 흔적